2024-09-15 15:25 (일)
사업 미쳐야 성공한다...... 함서경 유러피안 대표이사
사업 미쳐야 성공한다...... 함서경 유러피안 대표이사
  • 김은정 발행인
  • 승인 2024.08.31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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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마인드·자기 신뢰·목적 확실해야
최근 인스타  유튜브등에서 가장 핫인물 청담캔디언니 함서경 유러피안대표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기 신뢰, 목표와 목적이 확실해야 한다.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다.” 20대 초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10여 개 
사업을 성공시킨 현역 사업가인 ‘청담캔디언니’ 함서경 유러피안 대표이사의 조언이다. 리치에서 함 대표를 만났다.

함서경 유러피안 대표이사는 단 10개의 릴스로 16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단번에 16만 팔로워의 롤모델이 된 인물이다. 함 대표는 20대 초 고향 강원도 강릉에서 옷 가게를 시작했다.

이후 40여 년 동안 다양한 사업에 도전하며 60대인 지금도 이탈리아 머플러를 수입하는 현역 사업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의류 소매와 재래시장 도매, 영어도서관, 에어비앤비, 일본 도소매업, 무역업 등 다양한 사업에 손댔고 모두 성공했다.

1986년 27세에 500만 원으로 명동의 사보이호텔 1층에서 옷 가게를 운영한 함 대표는 당시 7개월 만에 그 가게 임대권을 샀다. 30대부터 신사동에서 무역회사를 하다가 서울 삼성도 코엑스로 사무실을 이전했고, 이후 성공한 커리어우먼 3인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서울 청담동에서는 K-팝 팬들을 대상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2000년 초반에는 일본 오사카에 사무실을 두고 7년 동안 일본 온라인 시장에서 도소매업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홍콩,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과 무역을 했고, 일본과 유럽에서 원단과 의류, 머플러를 수입해 국내 패션 브랜드에 20년 이상 납품했다. 코로나 시기에 무역이 어려워지자 60대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2022년에는 네이버 쇼핑라이브를 이용해 패션 카테고리에서 3회 연속 1위를 했다. 40일 동안 혼자서 1일 1라이브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강릉에 세컨드 하우스로 통나무집을 지어 에어비앤비를 운영했고, 현재는 이탈리아에서 머플러 수입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담캔디언니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아들과 함께 제작한 콘텐츠로 한 달 만에 10만 팔로워를 달성했다. 

다음은 함서경 대표이사의 
일문일답이다.

Q 청담캔디언니’라는 닉네임을 쓰게 된 계기는?

A 퍼스널브랜딩을 하는 데에 있어서 이름이 굉장히 중요하다. 저는 패션 아이템을 수입하는 무역회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청담’이라는 것을 앞으로 넣었고(셀럽들이 많이 있는 곳이 청담이다) 캔디는 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젊은 사람들하고 소통하기 때문에 누구나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름으로 정했다. 그 이유는 ‘캔디’는 힘들어도 슬퍼도 울지 않는 명랑하고 발랄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Q 함서경만의 성공 노하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기 신뢰, 그리고 목표와 목적이 확실한 것이다. 결국은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성공의 원인이다. 저는 될 때까지 했다.


Q 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세 가지를 꼽는다면?

A 첫째는 사람이다. 직원이나 거래처 등 모든 것은 관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행력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고민만 하다가 실행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결국은 다른 사람 몫이 된다. 마지막은 끈기다. 즉, 버티는 힘이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총 없이 전쟁터에 나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연히 힘들고 어렵다. 그것을 견디고 버티는 것이 최종적으로 이기는 방법이다.


Q 한 달 만에 인스타그램 팔로워 10만 명이 늘었는데?

A 결국은 콘텐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40년 동안 10개 이상의 사업을 하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내 자녀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업가나 젊은이들에게 나누었더니 큰 반응이 왔다. 왜냐하면 그들이 선택해야 하는 매 순간 물어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서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 다양한 성공과 실패, 실수를 솔직하게 가감 없이 나눈 것이 큰 공감을 일으킨 것 같다.


Q 그동안 해온 사업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A 40년 동안 10개 이상의 사업을 했다. 강릉에서 두 평짜리 옷 가게를 시작으로 27살에 서울에 와서 명동에 소매 옷 가게를 오픈했고, 바로 1년 후 일본에서 원단을 수입하고 홍콩, 싱가포르에서 명품 의류 재고를 수입해서 무역상으로 거듭나게 됐다. 최종적으로 패션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건너가 이탈리아에서 원단, 의류, 머플러 등을 수입해 국내 패션 브랜드에 납품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캐시미어, 의류, 머플러를 수입했다. 청담동에 영어 도서관을 오픈, 7년 동안 운영하기도 했다. 청담동에 우리나라 톱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모여 있다. 그 안에 우리 꼬마빌딩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한류 전문 에어비앤비를 7년 동안 운영했다. 디지털 시대가 되고, 일본에서 온라인으로 명품 액세서리 도소매 사업을 했다. 현재는 이탈리아에서 머플러 수입을 하고 있다. ‘부의 인사이트’ 책을 출간한 후 젊은 창업자들을 돕는 비즈니스 스쿨도 운영하고 있다. 


Q 부자들의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A 부자 대부분은 자산의 70%가 부동산이고 그들은 현재에도 현금을 보유하며 좋은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다.


Q 사업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A 우리나라가 해외여행 자유화가 안 되던 시절 수입 무역을 하다 보니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몰라 유럽에 다니면서 언어와 문화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그 시간이 젊은 시절 어려웠던 것 같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IMF)를 겪으면서 수입에 의존하던 우리 회사는 환율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았고 큰 손실을 봤다. 내 잘못이 아닌 외부적인 이유로 대부분의 수입업체가 파산했고, 우리 회사 역시 큰 손실을 봤지만, 위기에서 기회를 찾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또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역하던 우리 회사는 타격을 받았다. 그 기회에 B2B 비즈니스를 B2C로 전환해 온라인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를 시작했다. 덕분에 인스타그램에서 두 달 만에 15만 명의 팔로워를 확보했고, 그것을 계기로 ‘청담캔디언니’가 퍼스널브랜딩이 됐다. 이후 많은 출판사의 러브콜로 ‘부의 인사이트’ 책을 올해 3월 출간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수십 년 동안 상품을 판매하던 사업가에서 경험을 판매하는 지식 사업가로 거듭나게 됐다.


Q 위기도 있었을 텐데요?

A 인생의 문제는 파도처럼 온다고 한다. 사업가에게 있어서는 예기치 않은 수많은 파도를 만나야 하고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몇 번의 위기에서 살아남았던 기억은 더 큰 파도가 온다 해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기 신뢰로 이어져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생긴 것 같다.


Q 앞으로 계획은?

A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중장년들에게 평생 현역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가치를 실현하고 싶다. 66세인 내가 먼저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많은 이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 청년 사업가들에게는 먼저 그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 그들이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 있게 멘토 역할을 하고 싶다.


Q 사업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자기가 선택한 사업에 미쳐야 성공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대담 : 김은정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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