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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書道 외길 한숙희 서예가
한글書道 외길 한숙희 서예가
  • 월간리치
  • 승인 2015.10.12 12:01
  • 호수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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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書道 외길 한숙희 서예가필획마다 생동감 현대적 아취 (雅趣) 묵향에 끌리는 마음에 명사를 찾아 서도(書道)에 나선 지 사십 성상 안팎.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우리글을 보여주면 좋으리라 여겼던 엄마에서 이제는 서단에서 중추적 입지를 확보한 어엿한 서예가로 갈수록 원숙한 작품 세계를 열고 있는 한숙희 작가의 서예 이야기와 작품세계를 깊어가는 가을 리치에서 자세히 살펴봤다.기억 속에 잠들어 있거나 혹은 머리로만 알고 지내느라 메말라 있던 선현의 가르침이 눈앞에서 환하게 살아나는 감동은 서화작품에서 절묘하게 극대화된다. 숱한 유형의 서화작품 가운데 한글 서예에 바탕을 둔 작품들은 특히나 전문적 식견 없이도 뭇 국민들의 심사를 묵향의 세계로 인도하기 적합하다. 그렇다고 가볍고 단조롭기만 하다면 깊고 그윽하게 오래 남는 묵향의 세계 초입에서 발길을 돌리는 것에 그치고 마는 법.사십 생애 갈고 또 간 예술혼“은은한 먹의 향이 무작정 좋아서 시작한 글씨가 이토록 긴 시간 함께하면서 제 생애의 대부분이 스며들었어요.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난 2008년 큰 전시회를 연 뒤로도 멈춤 없이 정진해 왔을 따름입니다.”사십년 전 서예를 처음 시작할 때는 아이들이 아름다운 우리글을 보면서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한숙희 서예가.어느 순간부터인가 높고도 먼 경지가 아스라하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서도의 길에 매진하기 시작했노라고 고백한다.들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때도 많았지만 어려움을 마다 않고 아이 셋인 주부로서의 삶과 서도의 궁극을 추구하며 정진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고비마다 돌아 가신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선생님께서 친히 써 주신 ‘論道講書’ 글귀를 되새기면서 흔들이는 마음을 다잡곤 했다”고 한다. 걷고 있는 길이 참돈 길인지 뭇 성인과 선현, 그리고 문인들의 정신세계를 정성을 다해 간 먹으로 붓글씨에 온전히 쏟아 붓고 있는지 순간 순간 돌아보며 묵묵히 정진해 왔다고 자부한다. 정철 박인로 시가부터 현대시까지“호미도 날히언 마라난…” 송강 정철의 사모곡을 비롯한 송강과 함께 조선 3대 시가인으로 필력을 떨쳤던 박인로의 시조에서 가람 이병기, 노산 이은상, 이호우 등 현대시조까지 한 작가의 필획으로 재구성하면 또 다른 세계로 펼쳐진다. “자나 깨나 쉴 사이 없이 님을 그리워하고 / 님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 거기서 나는 정진을 배웠노라. // 천하 하고 많은 사람 중에 / 오직 님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 거기서 나는 선정을 배웠노라. // 내가 님의 품에 안길 때에 / 기쁨도 슬픔도 님과 나와의 존재도 잊을 때에 / 거기서 나는 지혜를 배웠노라. // 이제 알았노라. / 님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 짐짓 애인의 몸을 나투신 부처시라고.” 춘원 이광수가 영혼을 사르며 토해냈던 대장부 절창이 그의 먹과 붓을 만나 또 다른 명품이 된다.여성이면서 춘원의 역동적 필체와 줄기찬 행간의 질서를 통해 되살려 냈기에.대장부 기개 가득한 문장이 이렇게 재탄생하는데 서정주, 윤동주 등 현대 서정시인들의 곡조야 더욱 새로울 밖에.예술인으로서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주부로서 정진했던 그의 삶은 신사임당상 수상으로 보답받은 바 있다. 불가에서 그리스도교 진리에 가깝게이것이 인연이 되어 신사임당상 수상작가전에 출품했던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를 서예로 옮긴 작품은 한 작가만의 구성미와 역동성, 비례미가 서예 특유의 고아미와 조화를 이룬다. 싯구 처음 등장하는 다짐 뒤로 곡진한 사연을 잔잔히 펼쳐 보인 다음 “왜 사냐건 웃지요.” 큰 화두를 첫 구절 “남으로 창을 내겠소”와 대칭되는 큰 글씨로 시작과 끝을 화끈하게 관통하는 미학을 보여 준다.성인과 선현의 심오하고 원대한 정신세계를 두루 섭렵하려는 노력 또한 폭 넓고 활달하다. 법성게와 반야심경, 문수보살 진성게 등 불교관을 담은 작품 뿐 아니라 주기도문, 요한복음 , 에베소서 등과 같은 성경의 좋은 구절도 단아하고 품격 있는 서체로 새로이 현현해 낸다. 금강반야바라밀경 열폭 대작 한글 서예와 자녀를 위한 기도문은 길고 짧음을 떠나 우리들 생의 의미와 희구함이 추구할 수 있는 절실함으로 응집될 수 있음을 농밀하게 내어 보인다.궁체 정자와 흘림, 고체에 두루 능해작가가 모셨던 스승 중 한 분인 구자무 선생은 “궁체의 정자, 흘림과 고체에 두루 능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아울로 구자무 선생은 우리나라 한학의 대가 이가원 선생에게서 한 작가가 당호를 얻은 사연이 있다고 전하는 말로 평론 이상의 논증을 들려 준다. 이가원 선생은 한 작가의 당호를 ‘喜雪當’으로 지어주면서 옛 적 소동파 선생이 자신의 거처에 ‘雪當’이라 칭했던 것을 떠올렸다고 한다. 당시 온 산하 눈이 깊었던 시절에 찾아온 서예가의 서품(書品)과 화격(畵格)을 꿰뚫어 본 이 선생은 눈이 깊은 가운데 매화향기가 은근히 울리는 것을 즐길 만 하다며 당호를 선사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서예와 그림에 더욱 매진일로 한다면 생동하는 서예의 필획이 그림에 그대로 옮겨지게 되고, 문아지풍(文雅之風)이 충분히 발현되어 한층 화격이 높아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했던 구 선생의 성원처럼 한 작가의 글씨와 수묵 담채의 예기(藝祺)는 갈수록 이 가을 원숙미를 더하고 있다.

기억 속에 잠들어 있거나 혹은 머리로만 알고 지내느라 메말라 있던 선현의 가르침이 눈앞에서 환하게 살아나는 감동은 서화작품에서 절묘하게 극대화된다.
숱한 유형의 서화작품 가운데 한글 서예에 바탕을 둔 작품들은 특히나 전문적 식견 없이도 뭇 국민들의 심사를 묵향의 세계로 인도하기 적합하다. 
그렇다고 가볍고 단조롭기만 하다면 깊고 그윽하게 오래 남는 묵향의 세계 초입에서 발길을 돌리는 것에 그치고 마는 법.


사십 생애 갈고 또 간 예술혼

“은은한 먹의 향이 무작정 좋아서 시작한 글씨가 이토록 긴 시간 함께하면서 제 생애의 대부분이 스며들었어요.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난 2008년 큰 전시회를 연 뒤로도 멈춤 없이 정진해 왔을 따름입니다.”
사십년 전 서예를 처음 시작할 때는 아이들이 아름다운 우리글을 보면서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한숙희 서예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높고도 먼 경지가 아스라하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서도의 길에 매진하기 시작했노라고 고백한다.
들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때도 많았지만 어려움을 마다 않고 아이 셋인 주부로서의 삶과 서도의 궁극을 추구하며 정진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고비마다 돌아 가신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선생님께서 친히 써 주신 ‘論道講書’ 글귀를 되새기면서 흔들이는 마음을 다잡곤 했다”고 한다.
걷고 있는 길이 참돈 길인지 뭇 성인과 선현, 그리고 문인들의 정신세계를 정성을 다해 간 먹으로 붓글씨에 온전히 쏟아 붓고 있는지 순간 순간 돌아보며 묵묵히 정진해 왔다고 자부한다.


정철 박인로 시가부터 현대시까지

“호미도 날히언 마라난…” 송강 정철의 사모곡을 비롯한 송강과 함께 조선 3대 시가인으로 필력을 떨쳤던 박인로의 시조에서 가람 이병기, 노산 이은상, 이호우 등 현대시조까지 한 작가의 필획으로 재구성하면 또 다른 세계로 펼쳐진다.
“자나 깨나 쉴 사이 없이 님을 그리워하고 / 님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 거기서 나는 정진을 배웠노라. // 천하 하고 많은 사람 중에 / 오직 님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 거기서 나는 선정을 배웠노라. // 내가 님의 품에 안길 때에 / 기쁨도 슬픔도 님과 나와의 존재도 잊을 때에 / 거기서 나는 지혜를 배웠노라. // 이제 알았노라. / 님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 짐짓 애인의 몸을 나투신 부처시라고.” 춘원 이광수가 영혼을 사르며 토해냈던 대장부 절창이 그의 먹과 붓을 만나 또 다른 명품이 된다.
여성이면서 춘원의 역동적 필체와 줄기찬 행간의 질서를 통해 되살려 냈기에.
대장부 기개 가득한 문장이 이렇게 재탄생하는데 서정주, 윤동주 등 현대 서정시인들의 곡조야 더욱 새로울 밖에.
예술인으로서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주부로서 정진했던 그의 삶은 신사임당상 수상으로 보답받은 바 있다.


불가에서 그리스도교 진리에 가깝게

이것이 인연이 되어 신사임당상 수상작가전에 출품했던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를 서예로 옮긴 작품은 한 작가만의 구성미와 역동성, 비례미가 서예 특유의 고아미와 조화를 이룬다.   
싯구 처음 등장하는 다짐 뒤로 곡진한 사연을 잔잔히 펼쳐 보인 다음 “왜 사냐건 웃지요.” 큰 화두를 첫 구절 “남으로 창을 내겠소”와 대칭되는 큰 글씨로 시작과 끝을 화끈하게 관통하는 미학을 보여 준다.
성인과 선현의 심오하고 원대한 정신세계를 두루 섭렵하려는 노력 또한 폭 넓고 활달하다.
법성게와 반야심경, 문수보살 진성게 등 불교관을 담은 작품 뿐 아니라 주기도문, 요한복음 , 에베소서 등과 같은 성경의 좋은 구절도 단아하고 품격 있는 서체로 새로이 현현해 낸다.
금강반야바라밀경 열폭 대작 한글 서예와 자녀를 위한 기도문은 길고 짧음을 떠나 우리들 생의 의미와 희구함이 추구할 수 있는 절실함으로 응집될 수 있음을 농밀하게 내어 보인다.


궁체 정자와 흘림, 고체에 두루 능해

작가가 모셨던 스승 중 한 분인 구자무 선생은 “궁체의 정자, 흘림과 고체에 두루 능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아울로 구자무 선생은 우리나라 한학의 대가 이가원 선생에게서 한 작가가 당호를 얻은 사연이 있다고 전하는 말로 평론 이상의 논증을 들려 준다.
이가원 선생은 한 작가의 당호를 ‘喜雪當’으로 지어주면서 옛 적 소동파 선생이 자신의 거처에 ‘雪當’이라 칭했던 것을 떠올렸다고 한다. 당시 온 산하 눈이 깊었던 시절에 찾아온 서예가의 서품(書品)과 화격(畵格)을 꿰뚫어 본 이 선생은 눈이 깊은 가운데 매화향기가 은근히 울리는 것을 즐길 만 하다며 당호를 선사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서예와 그림에 더욱 매진일로 한다면 생동하는 서예의 필획이 그림에 그대로 옮겨지게 되고, 문아지풍(文雅之風)이 충분히 발현되어 한층 화격이 높아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했던 구 선생의 성원처럼 한 작가의 글씨와 수묵 담채의 예기(藝祺)는 갈수록 이 가을 원숙미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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