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13:56 (목)
韓 문학, 새 역사를 쓰다....한강 작가
韓 문학, 새 역사를 쓰다....한강 작가
  • 김은희 기자
  • 승인 2024.11.02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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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가운데 한강 작가

 

소설가 한강이 대한민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한국 문학의 새 역사를 썼다.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2000년 평화상을 탄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이자 24년 만이다. 리치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출간 후 십오 년의 시간이 세찬 물살처럼 흐르는 동안, 고백하자면 이 책에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세간의 관심도 오해도 뜨겁고 날카로워, 혼자서 이 소설을 써가던 순간들의 진실과 동떨어진 것이 되어버린 듯 느낀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귀밑머리가 희어지고 어느 때보다 머리가 맑은 지금, 나에게는 이 소설을 껴안을 힘이 있다. 여전히 생생한 고통과 질문으로 가득 찬 이 책을.”한강 작가가 2022년 3월 자신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채식주의자’의 개정판을 내놓으며 이렇게 썼다.
2007년 출간된 ‘채식주의자’는 2016년 세계적인 권위의 인터내셔널 부커상, 2018년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는 등 한국 문학의 입지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흰’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 깊이 있는 서사와 인간의 내면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문체로 주목받아 온 한강은 지난 10월 10일 노벨 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 스웨덴 한림원이 생중계를 통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작가 한강을 선정했다고 알렸다.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선정 사유를 밝혔다. 한림원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 책은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통해 증언 문학이라는 장르에 접근한다고 전했다.
여성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역대 18번째다.


한강은 포니정재단으로부터 ‘혁신상’도 받았다. 포니정재단(이사장 정몽규)은 지난 10월 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을 열고 올해 수상자인 한강 작가에게 시상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포니정재단 설립자인 정몽규 이사장, 고(故) 정세영 HDC그룹(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부인 박영자 여사, 수상자인 한강 등이 참석했다.


정몽규 포니정재단 이사장은 “한강 작가는 1990년대 초반 문단에 등장한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아왔다”며 “언어와 소재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매번 새로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감정의 진폭을 불러일으키는
한강 작가의 문학적 혁신과 도전의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고 축하했다.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두문불출했던 한강은 이날 처음으로 노벨상 수상과 관련 소감을 밝혔다. 한강은 “노벨 위원회에서 수상 통보를 막 받았을 때는 사실 현실감이 들지는 않아서 그저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려고만 했다”며 “전화를 끊고 언론 보도까지 확인하자 그때에야 현실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무척 기쁘고 감사한 일이어서, 그날 밤 조용히 자축했다.


그 후 지금까지 많은 분이 진심으로 따뜻한 축하를 해주셨다”며 “그토록 많은 분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셨던 지난 일주일이 저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다”고 했다.


한강은 “한편으로 이후 제 개인적 삶의 고요에 대해 걱정해 준 분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세심히 살펴주신 마음에도 감사드린다”며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저는 믿고 바란다.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를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또 “지금은 올봄부터 써온 소설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보고 있다”며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소설을 완성하는 시점을 스스로 예측하면 늘 틀리곤 했기에 정확한 시기를 확정 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는 저와 연결되는 통로를 통일해 모든 혼란과 수고, 제 주변 사람의 부담을 없애고자 한다”며 “제가 출간한 책들에 관련된 일들은 판권을 가진 해당 출판사에 부탁하고, 그 카테고리에 잡히지 않는 모든 일은 문학동네 담당편집자의 이메일로 창구를 일원화하겠다”고 했다.


한강은 “저는 술을 못 마신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다. 좋아했던 여행도 이제는 거의 하지 않는다”며 “다시 말해 저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사람이다. 대신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알렸다.

“아무리 읽어도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는 좋은 책을 놓치지 않고 읽으려 시도하지만, 읽은 책들만큼이나 아직 못 읽은 책들이 함께 꽂혀 있는 저의 책장을 좋아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친구들과 웃음과 농담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좋아한다.”


한강은 “그렇게 담담한 일상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이다”며 “아직 쓰지 않은 소설의 윤곽을 상상하고, 떠오르는 대로 조금 써보기도 하고, 쓰는 분량보다 지운 분량이 많을 만큼 지우기도 하고, 제가 쓰려는 인물들을 알아가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또 “소설을 막상 쓰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길을 잃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아 예상치 못한 곳으로 들어설 때 스스로 놀라게도 되지만, 먼 길을 우회해 마침내 완성을 위해 나아갈 때의 기쁨은 크다”며 “저는 1994년 1월에 첫 소설을 발표했으니, 올해는 그렇게 글을 써온 지 꼭 삼십 년이 되는 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상한 일은, 지난 삼십 년 동안 제가 나름 성실히 살아내려 애썼던 현실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한 줌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 짧게 느껴지지만,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은 마치 삼십 년의 곱절은 되는 듯 길게, 전류가 흐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라며 “약 한 달 뒤에 저는 만 54세가 된다. 통설에 따라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이라고 했다. “물론 70세, 8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것은 여러모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니, 일단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바랐다.

한강은 “물론, 그렇게 쓰다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 6년 동안 다른 쓰고 싶은 책들이 생각나,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세 권씩 앞에 밀려 있는 상상 속 책들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들지만 말이다”고 했다. 그는 “다만 그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다”고 바랐다.


한강은 “지난 삼십 년 동안 저의 책들과 연결돼 준 소중한 문학 독자들께, 어려움 속에서 문학 출판을 이어가고 계시는 모든 출판계 종사자 여러분과 서점인에게, 그리고 동료, 선후배 작가들께 감사를 전한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저를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분들과 포니정재단의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고마워했다.
포니정 혁신상은 현대자동차 설립자인 고(故) 정세영 HDC그룹(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애칭인 ‘PONY 鄭(포니정)’에서 이름을 따 2006년 제정됐다.


혁신적인 사고를 통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해 상금 2억 원과 상패를 수여하고 있다. 제1회 혁신상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받았다.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 조성 진 피아니스트, 김하종 사회복지법인 안나의 집 대표, 황동혁 영화감독 등이 수상한 바 있다. 지난해 제17회 포니정 혁신상은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이 한국 축구계의 지평을 확장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했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관련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일주일간 서점 매출이 40%나 늘었다. BC카드에 따르면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10월 10~16일 교보문고 등 온오프라인 대형서점 관련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주(10월 3~9일) 대비 39.2%, 전월 동기(9월 10~16일) 대비 44.0%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는 31.9% 상승했다.


한편, 1970년 11월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한강은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인터내셔널 부커상, 말라파르테 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산클레멘테 문학상 등을 받았다. 노르웨이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 참여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 문단의 거장인 소설가 한승원의 딸이기도 하다.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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