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가 만든 섬 추자도. 제주항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추자도는 ‘섬 속의 섬’으로 불린다. 섬 모양이 바다 한 가운데에 추자나무(가래나무) 열매를 뿌려 놓은 것 같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상추자도, 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 4개의 유인도에는 아직도 어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트레커들에게는 낯선 곳이지만 낚시꾼들에게는 이미 바다낚시 천국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추자도에 처음 가는 사람도 바다에 낚싯대만 던져 놓으면 물고기가 걸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갯바위, 해변, 무인에서 모두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이런 추자도가 최근에는 트레킹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2010년 제주올레 18-1 코스가 개통되면서부터다.
추자도는 걷는 길의 평균 해발 고도는 높지 않지만 제주 본섬의 올레길과는 달리 등산에 가까운 길들이 많다. 해변에서 산의 정상까지 오르고 능선을 꽤 길게 걷는 구간도 있어 걷기 여행 초보자에게는 만만치 않은 코스다. 추자도의 올레길은 말 그대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그래서 트레킹의 묘미를 오히려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사실 추자도는 낚시와 올레길 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은 매력들을 품고 있다. 짧게는 당일치기 여행부터 낚시와 트레킹을 엮어 장기간 체류하는 여행까지 추자도를 만나는 방법 역시 다양하다.
거친 절벽과 완만한 숲길, 능선 위에서 바라보는 시원한 풍광, 따뜻한 인심이 묻어나는 사람들, 추자도에 가면 이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2박 3일간 머물렀던 추자도의 모든 풍광을 상세히 소개한다.
올레꾼들의 필수 코스 18-1
2007년 첫 개장 이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보여행코스로 자리를 잡은 제주올레는 총 26개 코스, 425km로 구성되어 있다. 26개의 코스 중에서 제주도 본섬이 아닌 우도, 가파도, 추자도에도 올레길이 조성되었는데 우도는 1-1, 가파도는 10-1, 추자도는 제주북부 지역과 연결된 18-1을 담당한다.
우도와 가파도가 비교적 낮은 난이도에 짧은 거리인 반면 추자도의 올레길은 총 길이 18.2km에 난이도 역시 다른 제주 본섬의 길들에 비해 높은 편에 속한다. 해변과 산 정상, 마을길과 숲길을 넘나드는 추자도 올레코스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면 더욱더 의미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코스는 추자도의 일부만 걷는 게 아니라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넘나들며 섬의 구석구석을 방문하게끔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올레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추자도의 여러 가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마을길과 천주교 순례길, 기정길 등 추자도를 대표하는 명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고 높은 전망대들까지 방문할 수 있기에 추자도 여행을 올레길 하나로 끝내도 충분하다. 걸어서 약 6~8시간 정도 걸리기에 빠듯하게는 당일치기로도 가능하지만 이왕이면 추자도에서 하룻밤 묵어가며 여유롭게 걸어 보도록 하자.
올레길을 시작하고 끝맺는 것은 각자 편한 방식으로 선택하면 된다. 제주도와 완도에서 추자도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어느 곳에 내리는 가에 따라 시작점이 달라진다. 이번에는 완도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하추자도로 들어갔기에 하추자도에서 올레 18-1을 걷기 시작했다.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내린 후 약 10분 정도 걸으면 모진이 몽돌해변에 도착한다. 이 곳은 모래 대신 동글동글한 자갈들이 깔린 해변이다. 100여 미터 남짓의 해안에 몽돌들이 깔려 있어 파도가 들이칠 때마다 독특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몽돌해변을 지나 시멘트 임도를 오르다 보면 가슴 시린 이야기와 만난다. 대한민국 가톨릭 교구에서 지정한 천주교 성지 중 하나인 황경한의 묘와 눈물의 십자가다. 황경한은 신유박해 때 순교한 제주 관노 부부의 아들이었다. 어머니 정난주는 정약용의 조카이기도 하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그녀는 제주도로 유배 오던 중,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 것을 걱정해 추자도의 예초리 바닷가 갯바위에 아들을 두고 떠난다. 갯바위에 놓인 황경한은 추자도 주민에 의해 길러졌고 자라나 사연을 듣고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여생을 보냈다. 정난주와 황경한 모자의 사연을 간직한 추자도에는 황경한의 묘역이 있고 바로 옆 예초리 바닷길에 눈물의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다.
올레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자리한 것이 아니라 갯바위 입구까지 왕복으로 갔다 와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올레꾼들과 여행자들은 이 곳에 꼭 들른다. 힘겹게 내려간 계단의 끝에 서면 갯바위와 십자가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먼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십자가의 모습 자체가 여행자에게 큰 울림을 준다.
황경한의 묘에서 바라보는 추자도 앞바다의 풍광도 일품이다. 횡간도와 우두도, 추포도가 바다 위에 곡선을 이루며 멋지게 펼쳐진다. 애달픈 사연을 뒤로 하고 걷다 보면 어느새 수풀로 들어가는 올레길 표시가 이어지고 예초리기정길이 나타난다.
기정이란 해안 절벽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제주올레 코스 중 아름다운 길로 손꼽히는 12코스에서도 생이기정길이 있는데 그 길은 차귀도와 와도를 바라보며 야트막한 숲 속 절벽 길을 걷는 구간이다. 예초리기정길은 우측에 추자군도에 속하는 섬들을 두고 왼편에 키 작은 숲을 두면서 걷는 절벽길이다.
조금은 지루할 뻔 했던 시멘트 임도와 올레길이 대자연의 파노라마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며, 섬 트레킹의 최고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이 길은 여행자가 어촌 마을을 걸을 때 기대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숲과 바다, 약간은 비릿한 내음과 가슴이 시원해지는 풍광 등 섬 여행의 매력을 한 번에 쏟아낸다. 그래서 이 구간은 이왕이면 천천히 걸어보길 추천한다. 기정길을 걷다 보면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가게들과 어부들을 만날 수 있는 예초항으로 들어서게 된다.
풍광과 다양한 식생까지 만나는 능선
올레길 표식을 따라 예초리 마을을 지나면 돈대산으로 오르는 포장 임도가 나타난다. 돈대산은 해발고도 164m로 추자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헷갈리는 갈림길들이 있지만 표식이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키 작은 해송들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깔리고 비교적 평탄한 경사로를 오르면 작은 팔각정이 나타난다.
이 곳이 바로 돈대산 정상이다. 남쪽으로는 신양항과 신양마을이 한 눈에 보이고 먼 바다와 작은 섬들, 해안의 절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날씨가 매우 좋은 날에는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연 중 며칠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담수장을 내려다보며 정상을 내려서면 동남아시아의 정글처럼 식생이 변모하며 어두운 숲길이 이어진다. 야생화와 들풀, 청미래 덩굴이 칭칭 감은 나무들 사이를 걷게 되고 어느덧 묵리교차로에 이른다.
표식에 따라 담수장 쪽으로 가다 보면 포장도로를 걷기도 하고 다시 비탈진 흙길을 걷기도 하면서 추자대교에 이르게 된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잇는 추자대교는 1993년 붕괴를 겪고 1995년 새롭게 개통했다. 다리를 건너면서 추자도를 상징하는 굴비 동상 앞에서 인증 사진도 한 장 찍어보자.
두고두고 꺼내보는 인증샷 ‘묵리 고갯길’
묵리 마을은 산에 둘러싸인 마을이다. 둥글둥글한 능선이 마을을 감싸 안은 형태로 언제나 자욱한 물안개가 낀다고 알려져 있다. 묵리 마을을 지나면 하추자도와 추자군도가 한 눈에 보이는 고갯길에 오르게 된다. 서서히 오르는 듯하지만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언덕 구간이다.
묵리 고갯길에 도착하니 하추자도와 추자군도의 풍광이 더욱더 선명하게 풀쳐진다. 이 곳에서 맑은 날에는 한라산까지 볼 수 있지만 대부분 한라산은 구름에 가려져 있다. 빨간 프레임의 포토존은 바다와 함께 예쁜 액자 역할을 한다. 이 곳을 그냥 지나쳤다면 다음 날에 마을순환버스를 타고서라도 들러 보도록 하자.
두 발과 마을버스 한 대만으로 충분
상추자도 추자항에서 정각에 출발해 종점인 하추자도 예초리 마을까지 다녀오는 마을버스만으로도 추자도를 즐길 수 있다. 섬에 하나 뿐 인 마을순환버스는 상추자도의 관광 명소인 영흥리를 지나고 추자대교를 건너 묵리 마을과 신양 마을, 신양항과 장작평사, 돈대산과 예초리까지 방문한다.
많이 걷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산책할 정도로만 시간을 잡고 마을순환버스를 타며 여행하면 된다. 정거장이 아니더라도 내리고 싶은 곳이 있다면 친절한 기사님이 정차를 해 주기도 한다. 느릿느릿 동네 주민들과 여행자들을 싣고 1시간에 한 대만 운영하는 버스만으로도 추자도 여행은 충분하다.<자료 제공/ 혜초여행>
「자료 제공 : 혜초여행, www.hyech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