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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미학 순도 높은 정제미
생명미학 순도 높은 정제미
  • 월간리치
  • 승인 2016.11.10 17:28
  • 호수 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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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섭리 그대로 존재하는 생명체들. 저마다에 신성이 깃들어 있음을 느끼기에 생명들이 어울리고 멀어지는 그 숱한 숨결을 조형언어로 시각화한다. 피어나는 꽃으로 집중된 점으로부터 무한 확산하는 눈부신 이미지로 분출하는 미학을 이제는 절제와 조화된 감성으로 아울러 더욱 영속적인 세상을 열어 놓는다. 리치를 통해 김 작가의 작품 세계에 빠져본다.

“나는 생명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봄날 새싹이 돋아나는 걸 보면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현기증을 느낀다. 딱딱한 껍질을 깨고 여린 잎이 나와 줄기가 되고 가지를 뻗으며 현란한 꽃을 피우고 다시 열매를 맺는 과정이야말로 생명체가 스스로의 위대함을 뽐내는 놀라운 드라마 아닌가.”(작가노트 중에서)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김희경 작가의 조형세계를 두고 “자연이 발산하는 생명의 파동 또는 생명의 광휘를 표현한다”고 봤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자연세계 내면에서 물결치듯 음파가 번지듯 빛으로 쏘아지듯 다양한 파동과 울림을 예술 감수성으로 감득하여 시각화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삶의 에너지로서 빛과 파장은 모든 생명체를 활성화시키는 동력이다. 그 빛과 파장을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에 감응하여 예술 언어로 재해석 재구성하는 것이 작가들의 몫이 된다.


시각적 즐거움 미적 감흥

김희경 작가의 조형예술을 접하노라면 이같은 감성의 동화 또는 감성의 이입이 어렵지 않은 까닭이다.
딱 꼬집어 구체적으로 언술(言述)할 수 없지만 기억과 체험의 한 자락이 되살아나면서 한바탕 동기화하는 스토리들이 떠오르는 까닭 또한 마찬가지다.
독일 프랑크 프루트에서 활동하는 미술학 박사 마틴 슈미트(Martin H Schmidt)는 “평범의 시대, 미학이 사라진 시대, 영혼 없는 공장제품들이 판을 치는 시대에서는 사람들 속에 감춰져 있는 다양함과 조화미를 향한 그리움을, 자연과 함께 일깨워서 예술작품을 통해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경 작가가 그녀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세계로 선사해 주는 것처럼”
급변하는 세상 아름다움과 낭만을 다시 우리 관념과 일상생활로 되찾아 오고 싶을 때 당장 만나러 떠나야 하는 조형예술 세계, 김희경 작가의 작품이라는 추천사인 셈이다.


영혼의 나무를 기르다

슈미트 박사는 또 말한다. “형상이 태어나는 곳에서 대자연의 숨결과 합일하고 그 파장(파동)의 춤사위에 몸을 싣고서 함께 어우러지는” 조형세계를 김희경 작가가 펼쳐 준다고.
1988년 무렵부터 내놓기 시작한 ‘Soul Tree’연작은 직관적이고 구체적 반영에 가까운 면모가 주를 이뤘다는 평을 얻고 있다.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생명력의 분출을 보는 듯한 식물적 형상을 띈 브론즈 및 석재작품들이다. 이 식물적 형상은 그 후 몇 년 동안 점점 의인화 된다. 오비드의 서사시 ‘아폴로와 다프네’처럼 나무의 형상에 인간의 사지가 부여되어 의인화”하던 때가 있었다.
작가 스스로는 “나무가 신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순명(順命, 純明)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해진 한 곳에 자리하면서도 묵묵히 의연함을 잃지 않는 나무의 영혼이 작가의 영혼과 오보랩되면서 신이 주는 메시지를 깨달아 형상화하는 과정으로 이어간다는 것.


꽃으로 자연미를 함축

2009년부터 시작된 ‘Bloom’ 연작은 형태와 외화되는 이미지에 큰 변모가 일어난다.
신항섭은 김희경 작가 작품에서 꽃잎이나 씨앗, 풀잎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그대로 자연의 물상에서 포집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이들 조형적인 상상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며 신비스러운 영감의 산물 또한 아니라고 봤다. “자연미를 찬미하고 탐하는 그의 예민한 조형감각이 산출해 낸 순수한 조형언어”라고 설명한다.
이 무렵 작가는 전통 한지를 재료 삼아 특질을 극대화하는 작업에 심취한다.
슈미트는 한지 가운데 여러 겹으로 이뤄져 두껍고 촘촘하면서 섬유질이 드러나지 않는데다 종이죽 상태나 낱장의 상태일 때도 누르거나 압축시키거나 접거나 당기기 쉬워서 거의 모든 혀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예찬한다.
강한 흡수력을 자랑하는 한지에 빠르고 깊이 빨아들인 색채들을 조형예술에 적극 활용하는 작품세계는 김희경 작품세계의 Identity를 한 차원 더 높게 격상시킨 것으로 보인다.


간결 절제 응집의 미학

그런 작품으로 세상 그리고 관객들과 소통하던 어느 날이었다. 예의 작업에 몰입하고 있던 그에게 “제어하라”는 心語가 영혼을 울렸다고 한다.
감정을 절제하고 심상을 간결하게 손길을 가다듬으며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찬찬히 오랫동안 관조해 보았다고 한다.
“작업실 근처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흔들리는 잔물결에 시선이 머물렀고 문득 내면의 눈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위태롭고 불안한 현실 너머 영혼의 세계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작가노트 중에서)
인생 중후반기를 맞아 삶에 대한 진정성과 조형예술 작업에 몰입하는 참다운 의미에 대해 다시 깨달았다. 실재하는 모든 것을 다 포용할 수 있는 너비와 깊이, 감각적인 것을 초월하는 진정한 미적가치를 추구하는데, 그런데 시선을 자극하기 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고요함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평면인 듯 광대한 입체질감

신항섭은 “둥근 이미지를 지닌 작품의 경우에도 파장의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볼륨을 부여함으로써 입체공간을 점유한다. 그러면서도 전체 이미지는 평면회화의 정서에 근접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의 작품이 예사롭지 않음을 간파할 수 있다고 한다.
“평면과 입체를 아우르는 중간항”이긴 한데 평면에서 벗어난 입체로서 ‘릴리프’가 존재하며 그 얕은 공간에 떠오르는 볼륨과 곡선은 지극히 우아하고 고상하며 세련돼 있다.
얼핏 보면 평면회화에 가까운 까닭이 색채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어서인데 오히려 풍부한 시각적 이미지를 극대화함으로써 보는 이의 감성을 흡인하는 힘 또한 증폭된다.    
“색채 이미지는 강한 재료에 의해 억압된 조작의 형식으로부터 일탈하고픈 잠재적 욕구의 반영”(신항섭)이며 “마치 접속곡 같기도 하고 향기 가득한 꽃송이와 꽃잎으로 수북한 도자기 그릇 안에 있는 듯한 느낌”(슈미트)으로 보는 이의 감성과 정신세계를 잠식한다.
“그 순간 너와 내가 아무런 구분이 없다. 모두가 하나다, 완전한 평화다.”(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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